2003. 11  [ 11 권 4호 ] Home | Contact Us | English | KF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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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한국학
폴란드 바르샤바대 한국학의 어제와 오늘

- 오랜 어려움 속에서도 이어져 온 한국학 연구열 -
Christoph Janasiak
바르샤바대 일본·한국학과 조교수
christoph_janasiak@hotmail.com
폴란드 대학에서 한국에 대한 강좌는 1953년에 처음 개설되었으나, 폴란드인과 한국인의 최초의 접촉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세기 후반 폴란드 망명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 폴란드를 점령하였던 러시아제국은 이들을 러시아 동부지역에 강제 이주시켰고, 이들 중 일부는 인접한 만주나 사할린으로 탈출하였다. 이들은 만주 또는 러시아 동부해안지역에서 조선, 중국, 러시아 국경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인들과 처음으로 접촉하게 된다. 이들 중 여행가 겸 작가인 바클라프 지에로제프스키(Waclaw Sieroszewski)가 사회적 격변의 시기인 20세기 초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점차 강화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지에로제프스키가 한국에 대해 쓴 두 권의 책 「한국: 동아시아로 가는 열쇠」와 「기생 월선이」를 통해 폴란드인들은 처음으로 한국에 대해 알게 된다. 이들 여행기에는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함께 저자 자신의 추측이나 가설도 들어있는데 당시 정치상황에 대하여 잘못된 해석을 내리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한 까닭에 사료로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폴란드에서의 한국어 교육 뿌리내리기
2차대전 말까지 폴란드에서 한국어를 배울 만한 곳은 없었다. 당시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에서 한국은 일본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에 폴란드를 방문한 한국인은 일본인으로 취급되었다. 이들 중에 1930년대 바르샤바 주재 일본대사관에 치과의사로 근무한 유동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2차대전 후 폴란드 최초의 한국어 교사가 되어 폴란드 한국학 역사에 그 자취를 남겼다. 유동주 박사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바르샤바대 졸업생을 통해 이야기를 듣곤 하였다. 그는 독립운동가 유동하의 동생으로 안중근 의사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였으며, 결국 폴란드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1948년 북한이 폴란드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유 박사가 북한 국적을 취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처음 북한으로부터 한국어 강사가 폴란드에 온 이후 유박사는 한국어 강의를 그만두도록 강요당했는데, 그의 제자 중에 바로 폴란드 최초의 한국학자이자 필자의 스승인 할리나 오가렉-최 박사(Dr. Halina Ogarek-Czoj)가 있다.

1953년부터 1983년까지 폴란드에서 한국학 과정은 개설되지 않았고, 중국학 또는 일본학 학생들만이 제 2, 혹은 제 3의 동아시아언어로 한국어를 선택하였는데, 당시 한국어 강사는 평양에서 온 강사들과 오가렉-최 박사뿐이었다. 1956년∼1962년 사이에 오가렉-최 박사는 북한에서 현대한국문학을 연구하였다. 필자는 1971년∼1977년까지 오가렉-최 박사의 한국어 세미나와 평양에서 온 강사들의 강좌를 수강하였다. 당시 일본학 학생들 중에 한국어까지 배우려는 학생은 많지 않았고 더욱이 사전, 교재, 문학작품, 논문 등 연구자료가 매우 부족하여 어려움이 많았다.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 연구자료를 부탁하기도 했다. 이런 역할을 한 사람 중에 지금은 고인이 된 김연수 박사가 있는데, 그는 당시 서독의 영주권자로 킬대(Univ. of Kiel) 교수였다. 냉전시기에 김연수 박사는 공산국 폴란드를 방문한 최초의 남한인이었다. 그는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한국에서 출판된 문학작품, 사전, 논문들을 많이 보내주어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었다.

바르샤바대에서 일본학을 전공하였고 1971년부터 1975년까지 필자와 함께 한국학도 공부한 로무알드 후슈차(Romuald Huszcza) 교수는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는 바르샤바대의 한국 언어학 연구의 기초를 세워 발전시켰고 지금도 일반 언어학 및 일본 언어학과 함께 한국학 분야에서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학의 개설과 전환기
1983년 새롭게 개편된 일본·한국학과 내에 한국학 전공과정이 공식적으로 개설되었다. 이것은 한국학자 오가렉-최, 일본학자 미콜라이 멜라노비츠(Dr. Mikolaj Melanowicz), 한국학 및 일본학자 로무알드 후슈차, 중국학자 타데우즈 즈미코우스키(Dr. Tadeusz Zbikowski) 등의 헌신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이들 일본학과 중국학 분야 교수들의 도움없이 한국학을 독립적인 과정으로 발전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폴란드의 한국학자들은 서유럽을 비롯하여 간접적으로는 남한과도 교류를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유럽 내 한국학자들이 설립한 유럽한국학회(AKSE)를 통해 공식적인 교류를 시작하게 되는데, 오랜 고립기간을 지나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등지의 한국학 중심지에서 열린 국제적인 한국학 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바르샤바 주재 북한대사관이 거세게 항의, 위협하는 등 서방과의 모든 학술교류를 막으려 북한이 여러 가지로 시도 했음에도 폴란드 학자들은 모든 AKSE 회의에 참가하였다.

1988년 바르샤바대 신설 한국학 전공과정은 최초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이들 대부분이 평양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6개월간 어학연수를 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 졸업생들에게는 훨씬 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1989년과 1990년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의 공산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한국학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 것이었다.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기도 전에 한국 사업가와 언론인들이 바르샤바를 방문하였고 이어 작가, 예술가, 학생, 그리고 학자, 정치가, 대학 행정가, 대기업 인사들이 그 뒤를 이었다. 수십 년간 교류가 단절되어 멀게만 느껴졌던 한국이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났고, 이와 함께 닫혀있던 한국학의 문도 활짝 열렸다.

한국과의 교류와 발전상황
1989년 이후 재학생 55,000명의 폴란드 최고의 바르샤바대학은 한국의 많은 대학들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폴란드의 정치상황이 호전됨에 따라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바르샤바대를 방문하여 1∼2년 동안 연구 및 강의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바르샤바대 한국학 과정에 큰 공헌을 한 분들로는 서울대 이현복 교수, 연세대 최건영 교수, 충북대 김승환 교수, 전북대 김재민 교수, 전남대 배영만 교수 등이 있다. 이러한 교류는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의 지원으로 가능하였다. 특히 서울대 이민희 박사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향후 몇 년간 바르샤바대에서 연구 및 강의를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한국 학자들의 폴란드 방문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폴란드 학자와 대학원생들의 방한연구 및 한국어 연수를 지원하고 있다. 1996년부터 2003년 사이에 재단은 3명의 한국학 교수를 지원함으로써 폴란드 한국학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재단의 지원으로 3명의 대학원생이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이들 중 2명이 바르샤바대 한국학 강사로 임용되었다.

2001년에 필자는 로무알드 후슈차 교수의 지도로 한국 언어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2002년에는 미콜라이 멜라노비츠 교수의 지도로 요안나 루라즈가 한국사 박사학위를, 에바 리나제프스카가 한국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세 명 모두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다시 한번 일본·한국학과의 교수 및 여러 동료의 헌신적인 도움에 감사한다. 45년간 수많은 제자들에게 스승이자 학문적 안내자가 되어 주신 할리나 오가렉-최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오가렉-최 교수는 2003년 1월 은퇴하신 후에도 한국종교사 세미나를 담당하시며 한국학과에서 계속 활동하고 계신다.

한국학 과정의 현황과 전망
현재 한국학 과정은 3년제 학사학위과정과 2년제 석사학위과정으로 매년 신입생을 받고 있다. 학사학위과정에서는 한글, 문법, 회화, 독해, 한국사, 문학 및 지리를 배우며, 한국학 입문 세미나를 통해 이후 학위과정을 준비한다. 석사학위과정에서는 고전 및 현대 문학, 언어학, 연극, 역사, 종교, 근대화, 언론학 등 선택과목과 석사논문 주제별 세미나 등을 수강한다. 또한, 1998년 삼성전자가 지원하여 마련된 어학실습실에서 한국어를 익힐 수 있다.

한국학 도서관은 7,000권 이상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교류재단 및 개인 후원자들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있다. 이에 비해 지난 1980년대에는 한국학 장서가 1,000권 미만이었고 주로 소련과 북한의 이념 서적이었다.

오늘날 많은 한국학 과정 졸업생들이 폴란드와 해외에서 한국기업에 취직하거나 한국의 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다. 현재 5명의 학생들이 근대사, 전근대사,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분야 박사과정에 있다. 작년에 Anna Para- dowska는 서울대 최초의 한국언어학 분야를 전공한 유럽인 박사과정생으로서 현대한국어의 음성학적 측면에 대한 박사논문 심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향후 몇 년 사이에 대학원생인 Anna Wojakowska-Kurowska와 Dorota Ostrowska는 한국 문학과 종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또한, 바르샤바대 한국학 교수들은 언어학, 문학, 연극, 언론사, 근대화 분야의 논문집 출판을 준비 중이다. 현재 한국학 과정은 일본·한국학과에 속해 있으므로 학과장이 한국학 과정 주임 역할도 하고 있다. 학과장은 학과 교수들이 돌아가며 맡고 있는데 학과 교수들 간의 투표로 선출된다.

한국학 과정은 세계 여느 나라 대학의 인문학이 그렇듯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적으로 바르샤바대 한국학 전망에 대해 낙관한다. 현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구와 학문활동은 현재까지 거의 50여 명에 이르는 한국학 석사취득생 수가 말해주듯이 많은 학문적 업적을 이룩할 것임을 확신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속적인 지원은 바르샤바대뿐 아니라 폴란드 전체의 한국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많은 폴란드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지적인 호기심을 갖게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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